말하는 건축 씨티:홀





금요일 저녁, 바틀렛에 계시는 한국 분들이 학교에 모여서
정재은 감독의 영화 ‘말하는 건축 씨티:홀’을 관람했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잠깐 언급되지만
2007년에 건축가 이종호 선생님께서 서울시청사를 위한 안을 제안하시게 됩니다.
그 때 저는 다른 분들과 함께 두 달 정도 이종호 선생님을 도와드렸습니다.
2007년 더운 여름 날, 프라자 호텔 커피숍에서,
서울시청에서 시장발표를 마치신 후
검정양복을 입으시고 푸른 서울광장을 가로질러 프라자 호텔로 걸어오시던
이종호 선생님을 바라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말도 많았고 탈도 많은 서울시청 프로젝트를
멀리서 나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시청사가 완공되는 시점까지 있었던 일들을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터뷰와 현장 촬영을 통해서 엮어냅니다.
당시 서울시 부시장이었던 중구청장, 서울시 공사담당 주무관,
삼성물산 현장소장을 포함한 현장의 직원들,
건축가 유걸을 포함한 아이아크 직원들,
인테리어 시공업체 직원들, 문화재위원들, 건축가들
그리고 시민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지금의 시청 디자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시청이 시공되는 과정, 그 안의 갈등,
새로운 시청에 대한 각계의 의견을 보여줍니다.

건축을 대중에게 가까이 알린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겠지만
감독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에 대한 내용은
1시간 40분동안 전혀 찾을 수 없는 영화였습니다.
굳이 찾아보자면
‘부정적으로 언론에 평가받고 있고
턴키 발주제도의 변화를 만드는 계기가 된 서울시청사는
사실 누구의 잘못이라고 따지기는 힘들고
설계 및 시공과정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찐빵인줄 알고 먹어봤더니
팥소(앙꼬)없이 밀가루 반죽으로만 만들어진 빵이었다고나 할까요.

영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다음과 같은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먼저, 디자인적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새 시청사의 디자인적 측면에서 많은 논쟁들이 있어 왔는데
그런 부분을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더군요.
‘정말 혁신적인 디자인이었다’ ‘새로운 서울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디자인이었다’ 라는
심사에 참여했던 심사위원들과의 인터뷰와
‘건축에 대한 폭력이다’라고 비판하는 건축가들의 평을
그저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새 시청사의 개념
‘우리 전통건축 양식이 가진 저층의 수평적 요소와
처마지붕의 깊은 음영 및 곡선미를 재해석해서 옛 것에 대한 친근감을 살렸다” 이
실제 건축디자인에서도 잘 구현되었는지를 판단하게끔 해야 됐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영화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스템이 잘못 되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 시스템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어떻게 고쳐가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보이지 않습니다.
언론이 시청사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내용을 살펴보면
턴키 시스템의 문제, 공모방식의 문제 등을 주로 지적합니다.
그러나, 영화 속 사람들이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시스템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건축가 측이 이야기하는 시스템은
턴키를 통해서 사업을 수주한 건설사가
건축가를 ‘고용’하고, 건축가의 아이디어도 ‘소유’하면서
건축가의 설계 및 감리를 배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건설사 측이 이야기하는 시스템은
자신들이 수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동안 서울시의 정치적 상황, 문화재 위원들과의 갈등을 통해서
프로젝트가 계획된 절차대로 진행되지 않고,
시청 전면의 유리곡면 등에 대한 시공상의 어려움 때문에
시공기간이 부족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빠듯한 준공기한 내에 하자없이 공사를 맞추어야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기존 서울시청사의 보존과 철거,
그리고 구 시청과 새 시청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영화에서 빠졌습니다.
기존의 서울시청사는 1926년에 건립된 일제시대 경성부 청사로서
시청본관 자체는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낮다고 평가되었지만
본관 후면에 있던 3층 높이의 태평홀은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어왔습니다.
그러나, 2008년 8월에 태평홀은 기습적으로 철거되었고,
이후 기존 서울 시청사도 전면의 입면부분만 남겨놓고 철거됩니다.
(자세한 사진은 옆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tsori.net/1001 )
서울시장의 연회장소, 만찬장 등으로 이용되었다는 태평홀을
저는 직접 방문해보지는 못했지만
2007년 제가 참여했던 계획안 설계가 진행될 때
태평홀을 방문하고 오신 이종호 선생님이
태평홀 방문 이후부터 태평홀의 보존과 새 건물과의 연계방안을
새 서울시청사 설계의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로 생각하시고 작업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영화에서 많이 언급되는 덕수궁의 앙각과 새 시청의 건물높이도 중요하지만,
기존 서울시청사와의 관계가 위치와 기능상으로 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됐다고 생각합니다. 

네 번째로, 영화는 서울시-삼성물산-아이아크의 입장사이에서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는 듯 보이지만
건축가 유걸 선생님과 아이아크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여줍니다.
자신의 디자인이 초청공모전에서 당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발전과정에서 배제 당하고, 현장감리에도 참여하지 못했던 건축가가
피해자로서 인식되게 스토리가 흘러갑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같은 공모전에 참여했던 건축가 조민석 선생님이 말씀하시듯,
공모전에서 디자인이 당선되더라도
디자인 발전과정에서는 제외될 것이라는 것이 사전에
건축가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자신의 디자인에 대한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축가라면
설계 안이 당선되더라도 이후 과정에서는 제외될 것이라고 이미 공지된 공모전에는
참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건축가로서 서울의 시청사를 직접 디자인을 해보겠다는 건축가의 꿈과
‘설마 나를 빼고 진행을 하겠어’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할 텐데’라는 생각이
이 프로젝트로 발을 디디게 했다고 봅니다.
(사실 어떤 건축가라도 이런 제안을 받았다면, 거절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건축 내부의 문제, 건축이 사회와 가지는 관계 속의 문제들이
건축 외부에 있는 사람의 힘을 통해서 더 알려지고,
발전의 계기가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미 ‘건축학 개론’과 ‘말하는 건축가’ 등을 통해서
영화의 대중적 영향력을 절감하기는 했지만,
건축계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가
단순히 건축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문제일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중요한 이슈가 될 수 있음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발전방안을 모색하는데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영화 ‘말하는 건축 씨티:홀’ 은 N 스토어를 통해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http://nstore.naver.com/movie/detail.nhn?productNo=1290741

마지막으로, 좋은 영화를 관람할 수 있게 도와주신
UCL Urban Regeneration의 윤인향님께 감사 드립니다.

덧글

  • 이상헌 2014/02/24 15:47 # 삭제 답글

    이종호선생님사건 진실이 뭔지 알아보려다가 형 블로그에 들어와 버렸네요...^^;
    안타까워요 ....
  • 양 거시기 2014/02/26 11:33 # 삭제 답글

    이 다큐를 관람하면서 제가 느낀 소감과 거의 일치하는 내용이어서, 반가웠습니다. 다큐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없어서, 단지 건축이란 것이 이런 것이다, 라고 드라이하게 보여주려는('말해주려는'이 아닌) 의도인가?, 그럼에도 건축이 갖는 다양한 본질적 속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지 않았는가, 생각했습니다. 몇 가지의 단편적인 요소에 지루한 나열이 연속되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건축학을 이제 배우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건축에 대한 실망감이 앞서게 만든 다큐가 아니었나 하는 점입니다. 물론, 학생들에게 '이런 것이 건축이니 열심히 공부해서 극복할 수 있도록 하세요'라는 메세지, 교훈(?)을 주려는 의도가 숨어있는지도 모르지만.... 속좁은 기성인의 시각에서는 답답한 내용이라 생각되어, 조금 많이 아쉬웠네요. 전작인 '말하는 건축가'에 비교한다면, 많이 아쉬웠던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했습니다.
  • joeyboy 2014/02/26 14:33 #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많은 건축과 관련된 내용이 다양한 시각에서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신 아쉬운 부분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혹은 영화도 만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 아스트로보이 2014/07/09 18:27 # 삭제 답글

    하도 쌩뚱맞는 세상이라. 저도 건축을 좋아하지만, 한편으로 가장 어려운 학문이 건축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 jay 2014/08/25 01:14 # 삭제 답글

    이제 시작되는 다큐로서 중립의 의미가 크지않나 의견 남깁니다
    많이늦었지만요 검색하다 글을 남기네요

    Grime9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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